【연재기획】「신판화-또 하나의 우키요에」② 「새로운 우키요에」를 향한 시동
요약
메이지 시대는 전통적인 목판 기술에 석판, 동판 등 서양의 새로운 인쇄 기술이 도입되어 판화의 역할이 변화한 시기였습니다. 우키요에가 신문과 잡지에 매체의 자리를 내주는 한편, 호쿠사이와 히로시게 등의 작품은 해외에서 '예술'로 평가받으며 '자포니즘'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걸작들의 해외 유출로 우키요에 판화가 품귀 현상을 겪자, 메이지 상인들은 명작의 '복각판'을 제작했습니다. 와타나베 쇼자부로는 품질이 낮은 복각판 수출에 저항을 느끼고, 고품질의 조각과 판화를 갖춘 신작을 해외용 목판화로 제작하기로 결심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신작판화'로 불리게 됩니다. 쇼자부로는 1906년 '쇼비도'를 설립한 후 시제품 제작을 시작했으며, 조각사 치카마츠 오토스, 판사 오노 유타로와 협력하여 화가 다카하시 쇼테이의 풍경화 등을 제작했습니다. 쇼자부로는 오토스의 딸과의 결혼과 쇼테이와의 만남을 통해 우키요에계와 깊은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주로 풍경화와 화조화 중심이었던 '신작판화'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수출이 어려워지자 국내에서 수요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전통 기술을 활용한 '신시대의 우키요에' 제작을 모색하던 쇼자부로는 1915년 한 외국인 화가와의 만남을 계기로 '신판화'의 역사가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출처:美術展ナビ)